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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0 13:05 2,40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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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소설가 최인호의 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인기작가가 가톨릭 신자가 되고 또 최근에는 암으로 투병 중이면서 글을 써온 것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이번 8월12일 가톨릭 주보에 실린 글은 제가 읽은 그의 글 중에서 가장 좋은 글이었습니다. 잘 익은 아삭한 김치맛이 나는 그런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역시 익어야 제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인생도 시행착오와 고난을 겪어 보고 그것을 잘 숙성시켰을 때

제맛이 나는 완숙한 노년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노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 글을 복사했습니다.

 

최민순 신부님이 지은 ‘두메꽃’이란 시를 처음으로 본 것은 1994년 1월. 이한택 주교님의 지도로 한 달간 성이냐시오의 영성수련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예수회 신학생들과 피정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기숙사 로비 벽면에 걸려있는 ‘두메꽃’이란 시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두메꽃’을 또다시 만나게 된 것은 배론성지에 있는 피정의 집에 머무르고 있을 때 꽃밭 위 석비에 새겨진 시의 전문을 발견하게 된 이후였습니다.“외딸고 높은 산 골짜구니에 / 살고 싶어라 / 한 송이 꽃으로 살고 싶어라 // 벌 나비 그림자 비치지 않는 / 첩
첩산중에 / 값없는 꽃으로 살고 싶어라 // 햇님만 내 님만보신다면야 / 평생 이대로 / 숨어 숨어서 피고 싶어라.”
이따금 배론성지의 피정의 집 ‘두메꽃’에 갈 때마다 저는 신부님의 시를 하루에도 몇 번씩 읊고, 외우면서 뜻을 가슴 깊이 새기곤 합니다. 지금껏 제가 살아온 인생은 ‘두메꽃’과는 정 반대의 삶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외딸고 높은산 골짜구니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로 들끓는 도시의 광장이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벌에게 인정받고 나비에게 돋보이려고 기를쓰고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가 조금이라도 빗겨가면 악착같이 그 화제의 중심에 다시 서려 하였으며, 매스컴에 이름이 끊임없이 호출되어야만 출석부를 체크한 학생처럼 마음이 놓였고, 항상 저에 대한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온갖 찬탄과 박수소리, 선망의 시선에서 멀어진다 싶으면 불안하고 소외감을 느꼈던 전형적인 속물적인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세속적인 성공은 거둬서 한때 ‘성공시대’란 프로그램에서 출연요청을 받기도 했으며, 지금은 암과의 투병이 뉴스적 밸류(?)를 더 상승시켰는지 특집프로그램 같은 데서 집요한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40일간 단식하셨을 때 악마가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잠깐 사이에
세상의 모든 왕국을 보여주며 “저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루카 4,6)라고 유혹합니다. 악마는 ‘저 화려한 권력과 명예는 자기가 받은 것’이라고 단언하고 ‘만일 내 앞에 엎드려 절만 하면 모두가 당신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요.’라고 약속합니다. 그렇게 보면 제가 얻은 세속의 명예와 화려한 영광은 악마에게 끊임없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했던 우상 숭배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유하고 세속적인 권력과 육체적인욕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몸짱에 대한 열망, 병적인 성형중독, 미모지상주의, 출세, 타인을 지배하는 힘, 명품, 쾌락, 낙태, 지나친 건강의 추구, 웰빙, 독점적 권력, 식탐, 극단적 이기주의, 중독(거짓말, 섹스, 약물, 알코올), 악의, 탐욕과 교만,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옷, 미신 등…
이 모든 것은 물신(物神)의 소유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편은 미워하고 다른편은 사랑하거나, 한편은 존중하고 다른 편은 업신여기게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 6,24)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진실로 하느님을 섬기는 가톨릭 신자라면 재물을 버리고 두메꽃처럼 ‘값없는 꽃’으로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햇님(하느님)만 보신다면야 숨어서 핀다한들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보다더 화려하고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가치관은 지상의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주님은「가난한 사람은 행복하고,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 보다 굶주린 사람이 더 행복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보다 미움 받고 쫓기고 박해 받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이 크다.(루카 6,20-26 참조)」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값없는 꽃」의 절대 가치를 선언하고 계십니다.
아아, 제 인생이 얼마 남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외딸고 높은 산 골짜구니’에서 ‘두메꽃’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저로 하여금 끊임없이 ‘유혹하는 자’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라고 하시지 않았느냐?”(마태 4,10)라고 외칠 수 있도록 주여! 저에게 「빛의 갑옷(로마 13,12)」을 입혀주소서.(성경 인용은 공동번역 성서입니다.)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말씀의 이삭
최인호 베드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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