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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피정 중 [달이에게 배운 사랑]

2013.06.18 14:45 2,29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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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에게 배운 사랑 / 김수나 에우프라시아

 

봄꽃은 경이롭습니다. 아름다움은 붙잡을 수 없다는 삶의 진리를 보여줍니다. 진달래, 하얀 목련과 이름 모를 꽃을 흠뻑 쳐다보며 어찌해 볼 수 없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늘의 숱한 별과 선명한 달도 보았습니다.

 

손에 닿지 않는 아름다움 속에서 할 수 있는 건 조물주에게 감사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얼마 전 수원에 있는 ‘말씀의 집’으로 9박10일 침묵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꽃, 별, 달, 그리고 또다른 달이. 이 특별한 피조물 속에서 몸과 마음, 정신과 영혼을 살폈습니다.

 

말씀의 집’ 을 떠날 때 무심히 배웅하던 ‘달이’의 몸짓과 눈빛이 떠올라 달이를 소개합니다.

‘달이’는 ‘말씀의 집’에서 엄마인 ‘별이’와 함께 사는 백구입니다.

‘달이’와 저는 피정 첫 날 점심 후 산행에서 만났습니다.

‘말씀의 집’ 뒤로는 광교산으로도 이어지는 산행로가 있습니다.

 

산을 오르려 출발하자 백구 한 마리가 냉큼 달려와 앞장서서 걸었습니다. 70~8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앞장서 걷는 자세가 영락없이 손님을 안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녀석은 간혹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 한켠으로 비켰다가 또 걷고는 했습니다. 1시간여를 걸으니 수도원 도착표지가 나왔습니다. 중간에 갈림길이 세 군데나 있었는데 헤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녀석 덕분이었습니다. 신통하고 고마워서 침묵을 깨고 주방 아주머니께 살짝 이름을 물어봤지요. ‘달이’랍니다.

 

이틀째부터는 오후4시,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했습니다.

 

달이’는 안 보이다가도 어김없이 달려 나왔습니다. 저는 달이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을 주지 않고 내 할 일만 하겠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곤 했습니다. 걷다가 큰 나무 뒤에 앉아 숨어 있으면 되돌아 내게 오고 일어나면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묵묵히 앞장섰습니다. 고맙다고 쓰다듬어 주기라도 할라치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서둘러 사라져 버렸습니다. 달이는 먹을 것을 달라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마지막 산책까지 저와 함께 해 주었답니다.

 

피정을 마치기 4일전부터는 점심 후 30분 동안 한 바구니씩 쑥을 캐는 일정을 추가했습니다. 길을 나설 때 식당 뒤편 산 위에 누워있던 녀석을 분명히 보고 나왔는데 바람이 알려주었는지 어느새 등 뒤에서 나를 ‘툭’ 치는 ‘달이’를 새롭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쑥을 뜯는 동안엔 주변에 앉아 있거나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내가 왜 그런 걸 뜯는지 궁금한 듯 코를 킁킁 대곤 했습니다.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늘 조심하며 산책을 다니던 ‘달이’가 하루는 멍멍 소리 내 짖어서 의아했습니다. 남자 등산객을 지나치는 순간 술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제 뒤통수에 대고 ‘어디까지 가세요?’ 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지만 ‘달이’ 덕분에 여유 있게 지나칠 수 있었습니다. 달이는 나에게 조심하라고 일러 준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나오는 제 몫의 계란 부침을 숨겼다가 주곤 했지만 그 말없는 사랑에 답하기에는 늘 부족했습니다. 마지막 아침 식사 때 우유를 따로 담아두었다가 전자 렌지에 데워 ‘별이’ 조금, ‘달이’ 많이 주었습니다. 맛있게 먹던 달이의 모습과 조만간 족발이라도 사서 가야겠다는 마음이 겹쳐집니다.

 

잠깐 머문 손님 가운데도 잊지 않고 일부러 녀석을 보기 위해 다시 찾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러면 숙였던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로 볼 것만 같습니다. 다행히 2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마음의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달이’ 이야기를 너무 주절거렸습니다.

‘달이’는 ‘별이’의 딸인데도 ‘별이’보다 더 사연이 많아 보입니다. 표정도 무겁고 눈빛도 슬프답니다. 퇴소하는 날 ‘달이’가 12월에 새끼를 9 마리 낳았는데 그 중 4마리가 죽고 살아남은 5마리도 얼마 전 다 떼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악착같이 지키던 마지막 한 마리를 떼인 날은 4층까지 올라다니며 하루 종일 새끼를 찾았다고 합니다.

 

나를 따라오다가도 현관 앞에선 딱 멈추는 ‘달이’인데...

어지간히도 ‘맘이 아팠었나 봅니다.

 

자기를 가장 살뜰하게 챙겨주던 신부님이 서강대로 가신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새끼들은 다 떠나가고 피정자들은 늘 왔다 가고.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으면서도 산책을 많이 다녀서인지 ‘달이’의 다리는 아주 탄탄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체념한 듯 슬픈 듯. ‘달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사랑하되 중용을 수련하는 가장 도통한 피정자였습니다. 드러나지 않게 필요할 때 도움만 주고 내색하지도 뭘 요구하지도 않는 ‘달이’!.

 

피정 동안 달이에게서 말없는 사랑을 배웠습니다. 고요함에서 찾은 내적 평온함이 지친 영혼을 위로했습니다. ‘달이’를 기억하며, ‘달이에게서 배운 사랑’을 전하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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