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터

"너무 추우시겠다."

2017.01.06 07:31 1,98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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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에 나는 30일 피정을 하고 난 후 이번의 대림시기는 나에게 특별했다.

“세상을 내려다보시는 하느님”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우리 인간 구원 역사에 개입하시게 된 그분의 연민의 마음,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깊이깊이 알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오실 우리 주님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느님의 온기가 느껴지며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행복의 기다림의 시기, 기쁨의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 주님의 성탄시기를 보내고 있다.

구유에 누워계시는 아기 예수님을 조배하며 ‘너무 추우시겠다.’ 라는 생각에 머무르며 파노라마처럼 하느님의 아드님, 우리들의 구세주이신 거룩하신 분의 탄생에서부터 십자가상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그분의 지상에서의 삶이 계속 내 기도 안에서 깊이 머무르게 된다. 그분의 탄생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가 아니었다. 가난과 고통, 수난의 삶을 미리 본듯 나자렛에서 베들레헴까지의 모태에서 겪으셨을 태아의 고통과 구유의 가난, 환영은커녕 기득권자들의 배척으로 죽음을 피해 한 밤중에 이집트로의 피신의 여정, 기도를 하는 동안 너무 힘들었다. 아기의 고통이 내 가슴을 파고들어 고스란히 느껴지며 인간세상에 오시자마자 하느님이신 성자께서는 이민족의 땅에서 난민생활부터 경험하신다.


 ‘성자’께서 그런 방법으로 오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왜 그 길을 가셨을까? 나는 왜 주님의 성탄시기에 자꾸 주님의 수난에 머무르는지 모르겠다. 주님의 수난을 미리 보는 것만 같다.

구유에 누워계시는 아기 예수님을 보면서 “너무 추우시겠다.”


내 안에서 말씀으로 탄생하신 우리 주님!

추워 떨지 않도록 살아야겠다.

두번의 30일 피정은 참으로 은총의 시간이었다. 임마누엘 하느님이시다.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말씀으로 다가오신 예수님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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