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터

그리운 이름

2008.03.16 15:09 3,70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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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 서둘러 나왔는지... 방안도 여유있게 뒤돌아 보지도 못하고

열흘 간 잠겨있다 일제히 풀려난 40여통의 사연들을 해결짓기 위해서

부지런히 나왔건만...

 

수원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약올리듯 유유히

우회전을 하고 있는 원주행 버스...

그토록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건만 왜 그리 서둘렀던가... 

 

터미널에서 근 한 시간, 버스에서 근 한시간 30분을 머물면서

지난 피정의 시간들에 마음을 주었다...

떠오른 그리운 이름 하나 아버지...

 

누구에게나 그렇듯 아버진 좋으신 분이었다.

특히 나에겐 더...

아버진 꼬치꼬치 물으시는 법이 없이 내가 술술 열면 그제야

"언제나 말해주나... 기다렸다" 하셨다.

 

겨울 저녁 미사 후에 아버지와 들렀던 성당 앞 포장마차...

홀짝이며 나누어 마셨던 소주 한 잔...

기분좋아 연장전...

"말세여, 말세" 쯧쯧 하시면서 술상을 차려오시고, 안주를 준비하시던 엄마.

술기운이 그럴싸하게 올라오면 부르시던

"한 많은 대애도옹강아~~~"

아싸,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건너서

"한 많은 이 세상~~~ " 맞장구 치던 나...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고통스럽게 숨쉬는 아버지 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나는

"화색이 돌아오니 며칠 더 사시겠다"는

아버지 대자아저씨의 말에

아버지 귀에 대고

"아부지, 나 아버지 숨쉬는 거 못보겠어. 오늘 좋은 날이야

오늘 김대건 신부님이 아부지 기다려. 나 정말 아부지 못 보겠어. 내가 죽을 것 같애..."

해 버렸다...

 

그 말이 서운했을까?

먼데서 오는 자식들 뭐 하나라도 해 먹이겟다는 엄마를 따라

정말 잠깐 문 밖을 나서는 사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 장례식은 비가 많이 왔다.

신기하게도 하관예절 할 때 비가 그쳐

정말 서둘러서 서둘러서 아버지를 묻어야만 했다.

 

모든 것이 실감나지 않았고...

내가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는

아버지는 더 오래 살고 싶으셨는데 내가 죽게 했다는 마음만이

오래된 체기처럼 남아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꿈에서도, 기도 속에서도 아버진 슬픈 얼굴이셨다.

 

예수님 수난의 밤

난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무덤에로 가고 있었고...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움과 서러움이 복받쳐서 하냥 울었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행복해?"

놀랍게도 아버진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럼, 행복하지. 다 이루었는걸..."

 

나는 그런 아버지가 믿기지가 않아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아버지, 행복해?"

"그럼, 행복하지. 너도 있고, 오빠고 있고

언니들도 잘 자라주었잖니."

 

"아버지, 정말 행복한거야?"

"그럼. 니 오빠가 맏이라서 고생 시킨 것이 마음에 걸려."

 

성당 뒤에 앉아 기도하시던 연세 지긋하신 형제님이 내시는

"음음..." 헛기침 소리는 아버지의 답변과도 같이 들려와

그 분이 꼭 아버지 인듯 하여

나는 하마터면 돌아서서 "아버지"하며 부둥켜 안고 통곡할 뻔 했다...

 

아버지...

"그럼, 그 때 왜 내가 나가자 마자 죽었어. 왜 그랬어?" 투정 어린 내 질문에

아버진 이렇게 답하셨다.

"니가 힘들어 했잖니. 넌 내가 숨쉬는 것도 보기 힘들어 했잖이.

죽는 거 너한테 힘들까 봐 그랬지..."

 

4층 창문 너머로 김신부님께서 묵주들고 왔다갔다 하시는 모습이

생전 아버지 성당 마당 거니시며 묵주신공 바치시던 모습과 어쩜 그리 흡사하던지...

 

그 날밤

나는 울다 웃다.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아버니와 아주 오랫만에 마주 앉아 대작하였다.

아부지, 한 모금 나도 한 모금....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아버지의 한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한동안 여행갔다 오거나

수녀원 입회 후 본가방문 오는 날이면

팔을 크게 벌리고 푹 안아주면서 늘 이렇게 물으셨다...

"잘 있었니?"

 

응...

아부지, 난 잘있었어.

아부지 행복해?

응 행복해. 다 이루었잖니...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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